근래에, 소위 ‘명품백’을 사려고 한번정도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아래 세 가지 중 하나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테가베네타, 카세트백, 다니엘 리.
보테가베네타는, 브랜드 로고 없이, 위빙(인트레치아노 기법)방식의 제조 방식을 아이덴티티로 한, 상대적으로 중년 여성들(최초 구매 당시에 내가 20대여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에게 인기있다고 생각되던, (다니엘 리 이전에도) 절대 싸지 않던 브랜드 였다.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찾아보니 2018년!), 다니엘 리 등장이후, 위빙의 너비를 다양한 형태로 변형하고, 비비드한 컬러를 접목시키면서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끄는 가방과 브랜드가 되었다.
카세트백은 등장 이후, 통통한, 길쭉한, 어깨에 맨, 허리에 맨, 혹은 가죽으로, 천으로 엄청나게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졌고, 가방에 이어 구두, 악세사리, 의류까지 유행을 이끌면서, 보테가 베네타의 인기와 가격은 불이 붙었다.
보테가베네타의 새 전성기를 이끌던 다니엘 리가, 작년에, 버버리로 이적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얼마전, 그의 첫번째 콜렉션 팝업스토어를 신세계 강남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드디어 버버리의 시간이 오는가! 하는 생각에 구경을 스윽 했는데, 역시 나는 패알못인가. 먼가 애매하다.
버버리야 말로 아이덴티티가 몹.시. 강해서 변주할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기존의 옷들과 너무 동떨어진, 트렌드에도 딱히 맞지 않아보이는, (나는) 알수 없는 디자인의 옷들이 걸려있었다. 오로지 저 착장들끼리’만’ 조합하면 조금 나아보이겠다만.
EPL 의 축구 저지 스타일의 긴팔 티셔츠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디자인의 레터링이 'The wind of change' 였다. 변화의 바람, 어떤 변화를 말하는 것인가? 어깨에 테슬 장식이 달린 코트와 니트류도 평범한 소비자에겐 아리송한 느낌이었다.
기대한 디자인의 옷들은 찾을수 없었지만,
버버리 로고 폰트가 보테가와 비슷한 스타일의 fontface로 바뀌었다는 점,
허리 옆구리에 기마상 로고를 박아 넣기 시작했다는 점,
밝은 블루 컬러가 보테가 그린의 역할을 하게 될것 같다는 점,
다니엘 리의 장점은 옷보다는 가방, 구두 같은 액세서리 일것 같다는 강한 추정,
그리고, 분명 가격대가 엄청나게 오를 것이라는 점. 에서 변화의 바람은 느낄수 있었다.
매장에서도 다니엘 리와 이전 디자이너는 리카르도 티시의 옷들은 정확하게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다른 모양새였다.
성큼 결제하기엔 가격대가 있는 옷들이라,
‘다음 시즌에도 이 디자인이 나올까요? 이건 리카르도 티시의 디자인인가요, 다니엘 리의 디자인인가요?’
‘요건 다니엘의 ‘터치’가 있어서 이건 앞으로도 나올것 같구요, 요건 안 나올 확률이 더 높아요, 버버리체크를 이제 사선형으로 많이 활용하게 될것 같거든요.’
트렌치 같은 클래식을 제외하곤, 새로운 디렉터인 다니엘의 터치가 있는 옷들은 내년에 살아남을 확률이 크고, 그의 눈길을 받지 못한 옷들은 내년에 안나올 확률이 높단다. 정방향의 체크를 사선으로만 바뀌었을 뿐인데, 다음 시즌에 다시 볼수 없는 운명을 가진 많은 디자인들.
결국 내 손에 들린건 리카르도티시의 것 하나, 다니엘의 터치가 담긴 티시st. 디자인 옷 하나.
물론 변화의 바람을 구매하신 고객분들도 있었다. 그 분들이 변화의 선봉장에 함께 서실 분들이겠지.
평생 산 가장 비싼 캐시미어 코트를 들고 나오면서, 새삼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생각을 한다.
변화의 강도는, 분명 가격에서 가장 먼저 느끼게 될것 같다.